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투 마차 (문단 편집) === 명나라 때의 재발견 === 이후 [[몽골]]의 [[원나라]]에서는 별다른 등장이 없다가, [[명나라]] 시대 [[여진족]], 특히 명 말기 [[후금]](후일 [[청나라]])이 건국되어 크게 성장하면서 다시 대두된다. 남방에서 [[왜구]] 토벌에 큰 공을 세웠고, 북방에서는 기마민족의 침략을 방어하고 [[만리장성]] 수축에 공을 세운 [[척계광]]은 저서 '연병실기'에서 전차를 이용해 방어진을 짜는 거영과 전차의 설계도, 훈련법을 제시하였다. 다만 이 당시의 휴전 분위기로 척계광의 거영이 실전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된 일은 없다. 이 때문에 척계광의 거영이 몽골기병을 상대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을지는 지금까지 남아있는 떡밥이다. [[파일:external/i240.photobucket.com/syaeijin.gif|width=600]] 척계광의 전술에 등장하는 전차진형의 모습. 명나라에서 전차진에 사용하던 전투마차들의 모습.[[http://historum.com/speculative-history/83765-spanish-conquset-ming-china-6.html|*]] 명나라 멸망 후 청대에도 전차는 여전히 활용되었다. 그러나 위에 나온 척계광식의 대기병용 전차진형이 아니라 송나라 때 것처럼 전면에 커다란 [[방패]]판이 달린 형태였고, 기병이 중심이었던 청나라의 특성상 사용빈도 역시 감소한다.[* 청나라 태조([[누르하치]])실록에 보면 [[궁수]]나 [[총포수]]가 탑승하는, 앞부분에 대형 방패판이 장착되어 있는 수레를 앞세워 진군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. 이를 복원한 오스프리 삽화는 국내에 《전쟁으로 보는 중국사》라는 책에 실려 있다. 해당 그림은 본문에 기재.] [[파일:external/farm5.static.flickr.com/4496895504_744b669861.jpg]] 계림 공성전 당시 [[남명]]의 [[포르투갈]] 용병이 청군을 공격하는 모습. 청나라 군대가 앞에서 말한 방패판이 달린 전차를 사용해 포르투갈 용병대의 공격으로부터 아군 총병을 보호하면서 진군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